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성령의 시대 (7)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동진(東進)하는 한반도 교회







성령의 시대 (6)









Handel’s ‘Fra l’ombre e gl’orrori’ 
가냘픈 부나비(moth)의 처량한 몰골을 인생에 빗댄 것
공포, 절망, 고통...속에서 구원을 갈망ㅡㅡ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여(히 5:7)
우리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연상한다고도 할지
사람에 따라 청정심(淸淨心, 이글거리는 사악한 감정을 평정한다 할까)을 불러 일으키는 특이한 곡

https://www.youtube.com/watch?v=hFcY40h-vH8





성령의 시대 (5)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오늘날의 "방언" 기타 등등



요즈음 소위 "성령"의 은사라고 하여 예언하는 이들이 많은데 성령의 선물로 나타나는 "예언"은 그 특징 중 하나가 백 가지 예언이 나왔으면 백 가지가 다 맞는 데에 있고,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맞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것은 '가짜'라는 증거입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라고 선언하고 말한 "예언"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구약 성경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몇 가지 관점에서 진실을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한 후 그 신뢰를 바탕으로 거짓말을 하게 하는 수법을 쓰는 바 이는 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대로 그 나타나는 열매를 보고 아는 것이니 그 모든 언행에서 단 하나라도 진리에 어긋남이 있을 때 마땅히 ?마크를 달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써 오는 자기 부인을 대체적으로 말합니다. 바울 사도도 "특정된 날을 중히 여기느냐, 않느냐" 하는 것으로써 견해가 달라질 때 서로가 자기 말이 진리라고 억단할 것이 아니라 그 중심되는 바를 살피라 했으니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살든 죽든 않고 오직 그리스도 위해 살고 죽는"(롬 14:7) 일상새활 곧 그리스도를 위한(for Christ), 그리스도에 의한(by Christ), 그리스도의(of Christ) 삶에 있는 것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go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go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sla 위해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는 것이니 고로 사나 죽으나 주님의 소유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기록되기를,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하리라 하였느니라 사45:23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할 것이다' 하셨다 함과 같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 14:6-13) 

오늘날 들불처럼 일어나는 소위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에 주목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번지기 시작한 이 현상은 그 주된 근본이 영국의 소위 "웨일즈 부흥(Wales Revival)"이라 통칭되는 이반 로버츠(Evan Roberts)의 1904-6년 "영적 현상"에 있습니다. 거기서 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미 소개한 대로 이반 로버츠의 3운법칙은 그가 한 마디로 "가짜"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한 가지 예만 보아도 그들이 말하는 소위 "방언"입니다. 성경의 방언은 당시 사용되어지던 다른 나라나 민족의 여러 일상용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사람들은 "천사의 방언 운운"까지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천사의 방언"은 어디까지나 "그런 것이 설혹 있다 하더라도"의 뜻인 줄은 누가 모르겠습니까. 마는 그런 것이 마치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 고치는" 것은 그 때 그 때의 필요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확대 포장하여 해석할 때가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면 적그리스도의 기적(거짓으로 된 것까지 표함시켜)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과 악령 사탄의 기적이 서로 경쟁이라도 한다는 것입니까. 무의미한 일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한 것은 초자연 현상을 나타내는 그런 것에 있지 않고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향기 곧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삶을 의미한 것입니다. 즉 말씀 전파, 기도, 다른 사람들의 빈궁에 손을 뻗치는 구제(엡 4:28) 등의 자기 부인에 의한 헌신적 생활에 있습니다. 

국내외로 말씀을 전파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이슬람권을 예로 들어도 명약관화이지 않습니까. 바울이 받는 고난은 말씀 전파에서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말하는 것이지 소위 "하나님의 축복 받아" 잘 사는 삶이 아닙니다. 때가 임박하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한 바울 사도의 교회에 대한 충언, 오늘이야말로 그 시의적적한 경고의 의미를 음미할 때가 아닙니까. 물론 복음 전파에 따라 필요한 때에는 초능력도 수반됩니다. 사정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 현상 자체를 선전하고 이로써 권위를 세우려 하는 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티일 뿐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바로 그와 같은 패턴을 따를 것입니다. 즉 "성경에 나타난 기적"보다 월등한 것을 과시 선전함으로써 온 세계 사람을 속이는 미끼로 삼을 것입니다. 

남의  성경 해석에 의존하려는 마음은 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능력 있는 설교도 베뢰아 사람들은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날마다 부지런히 살펴 읽음으로써 믿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 성경의 상찬을 귀담아 들을 일입니다. 지금 이 글도 반드시 성경을 읽으심으로써 소화해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이 다른 소리를 할 때 거기에 반드시 귀가 솔깃해져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반드시 성경을 통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배울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렇게 하게 하는 안내에 불과합니다. 



성령의 시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