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양약(良藥ㅡgood medicine)은 입에 달지 않고 쓰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지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말하기를,

"그러니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른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를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할 것이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않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 일이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마 19:23-26/눅 14:26-33)

모든 소유를 버림ㅡ무소유ㅡ이것이 자기 부인이다.


만유의 소유(온 우주를 다 차지함)로 통하기 때문에 무소유다. 
단, 지금은 이를 누리는 때와 장소가 아닐 뿐이다. 
믿음의 인내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불교 신자들이 말하는 그런 "무소유"가 아니다. 
새 창조, 다시 출생함 즉 성령으로 출생함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언하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다"
(행 20:26, 27/렘26:2/겔33:8)ㅡ바울 사도.

이 자기 부인에 대하여 듣기 싫어하지만 

그러나 충실히 전달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바울은 원래 눈물이 많은 체질이었던가?
초대교회가 처한 당시 사정보다 더 나아진 오늘날 환경인가?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디모데야,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 받자"ㅡ바울 사도(딤후 2:3)

















이제까지 산다고 하여 살아 왔던 것과
지금부터 구원받아 사는 것과의 현저한 차이는
과거는 죽은 자로서의 모습인데 반해
현재는 다시 출생하여 새로 창조된 삶이니
전자의 경우 머리에서 떨어져 나간 몸
후자는 정상적으로 머리와 하나를 이룬 한 몸됨임.

따라서 과거에는 나 혼자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고
지금은 둘이 짝을 이룬 머리와 몸 관계이므로
머리는 몸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몸은 머리를 위해서만 그 존재 가치를 의식하는 것.
따라서 이 우주에서 사는 자 치고
(죽은 자 또는 장차 멸망에 들어갈 자만 제외)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단 하나도,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한 것이 우리의 구원.
(고후 5:14,15/롬 14:7-9)
그러나 자유 의지를 가졌으므로 
이 세상에서 시험 받아 얼마든 악령들처럼
자기를 위해 사는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즉 주님의 광야시험에서 보듯이 사탄에게 절함)
이는 필연적으로 세상 사랑과 직결되어 있으니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신 것.
이 말씀이 그다지도 이해하기 어렵더란 말인가.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모르기 때문에 어렵지, 알고 나면 쉬운 것이다



3위1체의 법칙과 3운법칙, DPA pix를 알면
성경은 내 손 바닥 위에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성경의 진실성을 확증하고
사람 사는 법을 가르쳐 죄와 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이심을 증명하고
그 구속의 원리가 바로 이 3위1체의 법칙을 근거로 하는
둘의 하나됨 즉 삶의 법칙에 있음을 그 어떤 누구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
세상 사랑을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
로마서 7장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이라는 망상을 분쇄시키고
한번 구원은 영원 구원이라는 말을 양면으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 때문
등등
달리 말하면 구원의 진리는 너무나 단순명료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무엇이냐
나의 구원 받음만 의식하는 자 망하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만 의식할 때 나는 안전하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14:15,24)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남녀노소 그리스도의 군인된 사람들이 부르는 양양가(洋洋歌)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니"(딤후 2:3)

인생의 목숨은 초로(草露)(註1)와 같고(註2)
부활의 영광은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그대(註3)가 산다면
아아 이슬 같이(註4) 죽겠노라

(註1) "조로"(朝露), 아침 이슬이라 해도 좋음('초로'는 풀 잎의 이슬)
(註2) 자연계 육체의 생명
(註3)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림이 마땅하다"(요일 3:16) 한 대로 
"새 계명"이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라 하셨으므로 
요한은 이를 정확하게 풀이한 것.
(註4) "주님처럼(주님 따라) 죽겠노라"도 무방함.
        앞에서 "이슬" 같은 목숨이라 했으므로 거기 맞추어도 됨.


바울은 "나의 골육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되지 못하고 망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못하시면 
차라리 제 이름도 주님의 책에서 말소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랑 즉 자아중심이 아닌 자기 부인을 가리켜
거룩함(聖)이라 하는 것. 성인, 성녀가 따로 있지 않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성인(saint)"들이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랑은 내면적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노틀담의 꼽추처럼 흉물, 추물로 생겼어도 
이 사랑이 있는 심성이라면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 한다. 
내가 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대칭 아담께서 이와 같이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 나를 사랑하여 위하시니 
그래서 자신을 송두리째 내게 선물로 주심으로(갈 2:20) 
내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만유의 상속자가 되어(대칭 아담과 함께) 
주인이 되어 있으니 나 자신을 위할 티끌만큼의 욕심을 낼 
공간이 도무지 없어 자연스럽게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은혜 때문이다.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 한 그대로
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자기 부인도 없고 
자아중심으로 욕심만으로 일그러진 심성이라면 
그가 아무리 입으로는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도 
자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단정이니 
왜냐 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는 자이고 
악(자아중심ㅡ"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한 대로)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뵌 적이 없다"(요삼 1:11)는 확증이기 때문이다.   
"
군인들이 이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것을 보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생각에 미치어서는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벧전 3:1). 
입으로만 믿는다 하고 이와 같은 선행이 없는 이른바 "구원 확신자"는 
많은 사람의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원흉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 







2017년 9월 6일 수요일

★★★1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 사형수로서 지금까지 "십자가 형구(刑具)를 지고" 움직여야 정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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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길"(벧전 4:12) 것 하나도 없는 영생의 희소식(福音)










"우리가 종일 주님 위해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롬 8:36/시 44:22). 
이 말씀이 공연히 기록된 것이 아님. 
주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여 
머리께서 하신 대로 몸으로서 나타내는 한 몸됨의 증거ㅡ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결과물이니까 
나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최대의 선행으로서 나타내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보람찬 일로서 인식하는 것. 
영원한 생명의 희락 속에서는 
절대로 이와 같은 황금 같은 기회가 없음. 

이런 내용을 주축으로 엮어져 있는 성경인데
거짓말이 있으리요ㅡ속임수가 있으랴. 
모든 거짓말은 개인과 집단을 막론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남을 위한 희생 봉사를 제일의(第一義)로 삼는 여기에 
무슨 자아중심이 깃들소냐.
몰라도 너무 모르고 오만함은 하늘로 치솟는 그대들이여!
이 사실 앞에서 겸손히 마음을 동이고 회개하여
영원 세계의 생명과 죽음에 오로지 대비하라. 
이 세상의 의미는 오직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 진리의 약점이면서도 강점이라 함이니
이 이상 가는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이 없기 때문. 
진화론과 같은 소위 "과학"이 별 망나니 춤을 추면서
성경의 진실성을 왜곡하려 하고 부정하려 해도
이런 명백한 진실은 그 어떤 거짓도 모방을 못하니까ㅡ.
약점이란 것은 이 세상이 사랑의 최후 봉사의 기회의 땅인즉 
함께 고통을 나누고 죽음과 저주를 같이 하면서
그들을 건져내는 것만이 유일의 과업이라
물에 빠진 자 건지려면 물 속에 부득불 들어가지 않고는 불가. 
불 속에 있는 자 구출하려면 불 속에 뛰어듦과 똑같은 이치로
하나님 앞 사형수를 건지자니 같은 진노와 저주 아래 
들지 않고는 도무지 방법이 없기에
사형수로서의 약한 자, 천한 자, 없는 자가 되어야만 하기에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됨이 필수 필연이므로
세상에서 인기가 없어 찾는 이가 적음이다. 
이것이 현시점 유일한 생명의 길이요 문이건만.
그래서 약점 아닌 약점이라 하는 것이다.  


2017년 8월 6일 일요일

인간의 고통과 함께 하시는 어버이 사랑










이것이 사랑의 함께 함ㅡ동고동락이다. 함께 하나가 되었다는 한 몸 체제가 되었다는 오직 그 까닭이다. 때문에 만물이 지금까지 함께 고통 중에 있다고 하였다(롬 8:22). 만물이 그러하고 창조자께서 친히 그러하신대 오직 인간만이 이 세상 지배신 악령에게 꺼둘려 속고 있어 실상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이 고통에서 배제되려고 온갖 죄를 지으면서 삶의 낙을 추구하니 얼마나 어리석고 둔한가. 실상을 직시하는 것이 정답이다. 인간과 함께 하시는 이 사랑(인간에 대한 어버이 사랑이 아니시라면 이같이 인간과 함께 고난 중에 계실 까닭이 없다)의 고난 중에 함께 하지 않는 자에게 누구든 화가 있다.  



고난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장차가 아닌 지금 이 시간) 영광 중에 있어











3운법칙/3위1체의 법칙을 알게 해 주신 것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






초능력을 행하시어 무소불위의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시니까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대환영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리고 제자들이 따를 때 주님께서는 뒤를 돌아보시고 마치 찬 물을 끼얹으시는 듯 말씀하시기를, 망대를 세우는 자가 즉흥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예산을 짚어보면서 가능할 때 세우고 전쟁에 나가는 자 역시 그러하듯이(눅 14:25)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한 자기 부인이 없는 한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다시 강조하여 선언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일반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이 대목을 빼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구원은 거저 얻어 챙기고 누리면 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복음(구원의 희소식)이 아니라 사람이 지어낸 복음을 말하여 속인 것입니다. 온 세상이 그러하므로 성겅대로 말씀을 곧이곧대로 가감 없이 전하라는 분부로 3위1체 법칙이나 3운법칙 기타 DPA pix 등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 복음이 다시 말해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기까지는 교회는 마땅히 이 세상에서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실하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 사형수들만의 인간 세상에서 사형수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사형수의 철저히 망가진 모습을 함께 취하지 않고서는 이 사형수들을 구원해낼 수 없는 까닭인 물에 빠진 자 구출하려면 물 속에 들어가야 되고 불 속에 있는 자이면 불 속에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고난 받으심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 자체는 완료되어었으나 그 몸된 교회를 통하여 마저 채우시는 머리의 "남으신 고난"이 있기에 그 몸된 교회는 당연히 함께 물과 불 속에 있다는 사리는 옳습니다. 이 사실이 성경의 진실성을 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하게 입증하는 것이언만(속이고 거짓말하며 지어내는 자들은 이런 종류의 말을 절대로 못하는 법이니까) 자칭 "교회"는 이를 완전히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병언 류의 크고 작은 사이비가 되어 오늘날까지 내려 왔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거짓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이비에 대하여 일절 긍휼로 대하셔서 다시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하신 것이 79세 목자가 이끄는 65명의 북한 교회의 시범(示範)입니다. 세상에 잠깐 얼굴을 비치게 하고는 죽음의 소굴 속으로 모두 다시 들어가 순교로 장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처음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상적인 모습이요 운영 방식임을 재차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전달해 주시는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바로 그 북한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귀담아 들을 일입니다. (유튜브 검색어 "북한 할아버지")


  







2017년 3월 9일 목요일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지막 아담"의 재림시까지는 수난의 역사 일색

 때문에 처음부터 말씀하시기를
육체는 죽이고 그 이상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육체의 궤멸만 아니라 영혼까지 불 가운데로 던지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신 것
눅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