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디모데야,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 받자"ㅡ바울 사도(딤후 2:3)

















이제까지 산다고 하여 살아 왔던 것과
지금부터 구원받아 사는 것과의 현저한 차이는
과거는 죽은 자로서의 모습인데 반해
현재는 다시 출생하여 새로 창조된 삶이니
전자의 경우 머리에서 떨어져 나간 몸
후자는 정상적으로 머리와 하나를 이룬 한 몸됨임.

따라서 과거에는 나 혼자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고
지금은 둘이 짝을 이룬 머리와 몸 관계이므로
머리는 몸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몸은 머리를 위해서만 그 존재 가치를 의식하는 것.
따라서 이 우주에서 사는 자 치고
(죽은 자 또는 장차 멸망에 들어갈 자만 제외)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단 하나도,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한 것이 우리의 구원.
(고후 5:14,15/롬 14:7-9)
그러나 자유 의지를 가졌으므로 
이 세상에서 시험 받아 얼마든 악령들처럼
자기를 위해 사는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즉 주님의 광야시험에서 보듯이 사탄에게 절함)
이는 필연적으로 세상 사랑과 직결되어 있으니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신 것.
이 말씀이 그다지도 이해하기 어렵더란 말인가.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모르기 때문에 어렵지, 알고 나면 쉬운 것이다



3위1체의 법칙과 3운법칙, DPA pix를 알면
성경은 내 손 바닥 위에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성경의 진실성을 확증하고
사람 사는 법을 가르쳐 죄와 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이심을 증명하고
그 구속의 원리가 바로 이 3위1체의 법칙을 근거로 하는
둘의 하나됨 즉 삶의 법칙에 있음을 그 어떤 누구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
세상 사랑을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
로마서 7장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이라는 망상을 분쇄시키고
한번 구원은 영원 구원이라는 말을 양면으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 때문
등등
달리 말하면 구원의 진리는 너무나 단순명료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무엇이냐
나의 구원 받음만 의식하는 자 망하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만 의식할 때 나는 안전하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14:15,24)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남녀노소 그리스도의 군인된 사람들이 부르는 양양가(洋洋歌)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니"(딤후 2:3)

인생의 목숨은 초로(草露)(註1)와 같고(註2)
부활의 영광은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그대(註3)가 산다면
아아 이슬 같이(註4) 죽겠노라

(註1) "조로"(朝露), 아침 이슬이라 해도 좋음('초로'는 풀 잎의 이슬)
(註2) 자연계 육체의 생명
(註3)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림이 마땅하다"(요일 3:16) 한 대로 
"새 계명"이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라 하셨으므로 
요한은 이를 정확하게 풀이한 것.
(註4) "주님처럼(주님 따라) 죽겠노라"도 무방함.
        앞에서 "이슬" 같은 목숨이라 했으므로 거기 맞추어도 됨.


바울은 "나의 골육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되지 못하고 망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못하시면 
차라리 제 이름도 주님의 책에서 말소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랑 즉 자아중심이 아닌 자기 부인을 가리켜
거룩함(聖)이라 하는 것. 성인, 성녀가 따로 있지 않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성인(saint)"들이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랑은 내면적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노틀담의 꼽추처럼 흉물, 추물로 생겼어도 
이 사랑이 있는 심성이라면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 한다. 
내가 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대칭 아담께서 이와 같이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 나를 사랑하여 위하시니 
그래서 자신을 송두리째 내게 선물로 주심으로(갈 2:20) 
내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만유의 상속자가 되어(대칭 아담과 함께) 
주인이 되어 있으니 나 자신을 위할 티끌만큼의 욕심을 낼 
공간이 도무지 없어 자연스럽게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은혜 때문이다.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 한 그대로
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자기 부인도 없고 
자아중심으로 욕심만으로 일그러진 심성이라면 
그가 아무리 입으로는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도 
자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단정이니 
왜냐 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는 자이고 
악(자아중심ㅡ"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한 대로)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뵌 적이 없다"(요삼 1:11)는 확증이기 때문이다.   
"
군인들이 이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것을 보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생각에 미치어서는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벧전 3:1). 
입으로만 믿는다 하고 이와 같은 선행이 없는 이른바 "구원 확신자"는 
많은 사람의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원흉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