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7일 수요일


이 상황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소임은 무엇인가















메시아 교회

http://meschurch.blogspot.com/2018/05/20.html




가장 상식적인 판단이 위기에서 구해 낸다 (재수록)





그들은 초능력이고 모든 지식이 있고
인간은 그들의 보좌를 받는 위치인데다
초자연계 몸까지 상실해 자연계 육체로 추락
모든 것이 더더욱 굼뜨기 때문에 
지식으로써 악령들을 상대하여
그 진위를 가려내기란 하늘의 별따기.
애초부터 그들에게 적수가 아니다. 
고로 이 경우에는 가장 믿음직한 안내자가 있어
그가 가리키는 대로 따르는 것 외에는
일절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안전하다. 
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서로가 맞아 떨어지는
바울과 다니엘의 예언. 


다니엘 12장 4절은 21세기의 폴라리스(북극성, 향도성/嚮導星)



옛날부터 방위의 기준이 되어 
항해자나 나그네의 친근한 벗이 되었다
회전반경이 매우 작아서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초능력이고 모든 지식이 있고
인간은 그들의 보좌를 받는 위치인데다
초자연계 몸까지 상실해 자연계 육체로 추락
모든 것이 더더욱 굼뜨기 때문에 
지식으로써 악령들을 상대하여
그 진위를 가려내기란 하늘의 별따기.
애초부터 그들에게 적수가 아니다. 
고로 이 경우에는 가장 믿음직한 안내자가 있어
그가 가리키는 대로 따르는 것 외에는
일절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안전하다. 
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서로가 맞아 떨어지는
바울과 다니엘의 예언. 
















다니엘의 예언과 바울의 예언은 하나의 의미ㅡ20세기 이후를 겨냥한 것 (끝)


다니엘의 예언과 바울의 예언은 하나의 의미ㅡ20세기 이후를 겨냥한 것  (끝)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다니엘의 예언과 바울의 예언은 하나의 의미
ㅡ20세기 이후를 겨냥한 것  (2)





(계속)





註2
Biblegateway 59개 영역판에서
우리말 번역처럼 된 곳이 23곳
KJV(흠정역)처럼 번역한 곳이 나머지 36곳으로
아래와 같음



KJ21ㅡstrong delusion
ASVㅡa working of error
AMPㅡa misleading influence, [an activity of error and deception]
AMPCㅡa misleading influence, a working of error and a strong delusion
BRGㅡstrong delusion
CSBㅡa strong delusion
CEBㅡan influence that will mislead them
CJBㅡto go astray
CEVㅡfooled into believing a lie.
DARBYㅡa working of error
DLNTa working of  error
DRAㅡbe judged
ERVㅡsomething powerful that leads them away from the truth
EHVㅡa strong delusion
ESVㅡa strong delusion
ESVUKㅡa strong delusion
EXBㅡsomething powerful that leads them away from the truth
GNVㅡstrong delusion,
GWㅡa powerful delusion
GNTㅡthe power of error to work in them
HCSBㅡa strong delusion
ICBㅡsomething powerful that leads them away from the truth
ISVㅡa powerful delusion
PHILLIPSㅡthe full force of evil’s delusion
JUBㅡthe operation of error in them
KJVㅡstrong delusion
AKJVstrong delusion, that they should believe a lie:
LEBa powerful delusion 
TLBㅡ lies
MSGㅡGod rubs their noses in it—gives them what they want.
MEVㅡa strong delusion
MOUNCEㅡan active delusion
NOGㅡa powerful delusion
NABREㅡa deceiving power
NASBㅡa deluding influence
NCVㅡsomething powerful that leads them away from the truth
NETㅡa deluding influence
NIRVㅡGod will fool them completely.
NIVㅡa powerful delusion
NIVUKㅡa powerful delusion
NKJVㅡstrong delusion
NLVㅡGod will allow them to follow false teaching
NLTㅡGod will cause them to be greatly deceived,
NMBㅡstrong delusion
NRSVㅡa powerful delusion
NRSVAㅡa powerful delusion
NRSVACEㅡa powerful delusion,
NRSVCEㅡa powerful delusion
NTEㅡa strong delusion
OJBㅡa powerful madduchei shav (false enticement, delusion)
TPTㅡa powerful delusion
RSVㅡa strong delusion
RSVCEㅡa strong delusion
TLVㅡa delusional force
VOICEㅡa deceptive influence
WEBㅡa working of error
WEㅡGod lets them be fooled
WYCㅡa working of error
YLTㅡa working of delusion



다니엘의 예언과 바울의 예언은 하나의 의미ㅡ20세기 이후를 겨냥한 것 (1)




이상 두 예언과 견주어 볼 때
마태복음서의 "동방 박사" 관련 기록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결론이 합리적일 듯.

마태는 4복음서 저자 가운데서
민족 의식(애국심)이 유별났다고 보아도 무방.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께 대한 경배 일화를
대서특필하는 식으로 나갔을 듯.
그러면 이 마태의 착각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전체 성경의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씌어진" 사실과
어떻게 조화될까ㅡ.

4복음서는 역사서이므로 "감화 감동"과는 무관.
진실의 기록이면 되는 것이다. 
마태의 "동방박사" 기록이 <진실>이라 말할 수 있는가.
"동방박사" 사건 자체가 진실이고
그것이 "성경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마태의 관점 자체도 꾸민 것은 아니고 진실이니까. 
그리고 마태가 이 사건을 취급했듯이
마태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당시 다수였다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ㅡ진실에 해당되니까.

사학자 또는 사실(史實) 편찬자의 관점(해석)을 두고 
진실 여부를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
사건의 진실성만 보장되면 역사서로서는 무흠하다. 
성령께서 이 마태서를 성경에 편입되게 하신 것은
이런 측면에서의 진실성을 보증하심인 것. 

아무리 역사서일망정 한 톨이라도 진실 아닌 것이 섞이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앞뒤 막힌 맹꽁이는
하나님께서도 원치 아니하시는 것이다. 
이런 것도 여과 없이 그대로 "성경적" 사실로
대접 받아 왔다는 것만으로도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임을 수차 논해 왔다. 













2018년 1월 15일 월요일

성경이 내걸고 있는 지원자 모집 광고














"의(義ㅡ올바름)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이 있으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다"(마 5:7) 


그 우렁찬 최강자의 포효ㅡ"약함"의 미학(美學)

그 우렁찬 최강자의 포효ㅡ"약함"의 미학(美學)



아담과 마귀와의 전쟁*(註).
아담 수하였던 마귀가 하극상하여 아담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현재와 같은 자연계 몸으로 전락하게 한 것.
물론 아담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 불복함이 되어 이 꼴이 났으므로
쌍벌(雙罰)주의에 의해 그 경과대로 마귀가 이 세상 신으로 군림.

전쟁은 일방적이면 아예 일어나지를 않아.
폐물이 된 아담의 자리를 친히 이어 받으시고 사람되신
메시아 곧 대칭 아담께서는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이 되시어도 천하무적.
따라서 일개 피조물인 마귀가 그 적수가 안돼. 상대가 되지 못함.

이 경우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강자가 약자의 위치에 서야 대등해지는데
그 방법이 바로 자진해서 고난을 감수하는 인내ㅡ이것.
동네 북처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되 끝까지 인내하는 것.
그래서 자진, 자칭 "약자"는
이 인내로써 승부를 거는 것.
성경이 인내를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선을 행해도 "참고" 선을 행하는 것(롬 2:7).
그래서 대칭 아담께서도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후 13:4) 했고
따라서 우리도 당연히 "그 안에서의 약함"(:4)을 고수해야.
누가 제일 잘 참느냐 시합이나 하듯이ㅡ.

초지 관철, 불굴 신념ㅡ이것이 과연 진정한 강자요 승자.
그래서 바울 사도가 자기의 육체적 결함, 약함에 대해
주님께 그 의미를 기도로써 여쭈어 본 결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함으로써 온전해지는 것이다"(고후 12:9).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라" 한 것.

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의 사자후가 아닌가!
천하무적 강자의 위풍당당이 아닌가.
싸워보지도 않고 벌써 이기고 들어가는 승전가(勝戰歌)이다.
최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개선문 통과다.

고로 이 세상 지배자 마귀에게 굴종하여
거지처럼 한 푼 더 얻어 차지하려고 쩔쩔 매듯이
세상 삶에 연연 모쪼록 잘 살아보자고
(진정 잘 사는 것도 아니건만)
바둥바둥대는 꼴로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함이 명약관화다.

마귀를 이김에 무슨 초인적인 것을 바라시는 것도 아니다.
단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듯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참는 것, 인내, 많이 참는 것, 끝까지 견디는 것.
사랑으로서의 인내ㅡ이 인내만을 요구하심인데
이것 하나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자를 누가 반기리요.
나 자신이라도 독자 여러분 자신이라도 이를 반기겠는가.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씀 고수하고 그 진리 사수하는 것쯤
삼척동자라도 할 수 있고 일자 무식꾼도 할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이 있는 한에는
넉넉히 하고도 남을 일이다.
사랑이 그 원동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생 자체가 여기서는 목적이 아니다.
사랑의 인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라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다"(고후 12:10).
약할 그 때가 곧 나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약자의 구차한 변명이나 궤변이 아니다.
진실 그대로의 영원한 진리이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다.
마귀가 가장 난처해하는 순간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를 찾지 못하는 가장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순간이다.
반면에 우리는 쾌재를 부르짖는 순간인 것이다.
독자여, 이 사실을 깊이 깊이 명심하시라.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다.

요한 계시록에 구원 받은 자를 

"이기는 자"로 색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다.






주(註)
아담과 마귀와의 전쟁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 











이 때에는 기뻐 뛰놀라 
즉 껑충껑충 길길이 뛰라고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이 이 세상 신이라는 사실은 "장난"이 아니다

사탄이 이 세상 신이라는 사실은 "장난"이 아니다






사탄이 이 세상 신/神, 이 세상 임금(王), 
지배자가 되어 있는 것은
종이 호랑이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 
생살여탈권을 쥐고 지금 부리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치 않으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이다"(마 10:28-34)

이상과 같이 말씀하실 정도인데

이 세상을 사랑하여 감히 살고자 하는 마음을 먹다니
당신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인가.
남의 나라에 와서 호강하려 하다니
그 나라에 복속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철천지원수의 나라에서랴.
우리의 대칭 아담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고 선언하셨다.
그럼 누구의 나라이냐.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의 나라다. 
아담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드록 유인질한 대가로 
아담의 인간 세상 통치를 찬탈한 것이다. 
아담에 대한 살인죄의 결과물이다. 

전에는 몰라서 세상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두 눈 뜨고 직접 보고 있는 실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칭 아담이신 그리스도께
달려나온 것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진노, 저주, 죽음, 멸망밖에 없는데다
게다가 죽음의 세력을 장악한 악마ㅡ그 악마의 나라.
세상 사랑은 믿음이 없거나
(아직까지 구원받은 역사가 없거나)
왕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는 증거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거짓된 교리로 인하여
스스로를 구원받은 자로 자처하고 있는,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는

지금이라도 그리스도께 돌아오면 구원이다.
구원받았다가 타락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경우는
지금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니 
워낙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닌
기독교 종교인들만 양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을 정도로

자아중심의 생활 자세 그대로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지독하게 중독되어 있는지
그런 무리들 중에 자칭 "구원파"라는 사이비가 생겨났을 정도다. 
그래서 남들에게 "구원받았느냐?" 식 전도를 한다. 
스스로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구원"파다. 

사이비의 특징은 한결같이 세상 사랑이다.

자아중심인지 자기 부인인지 식별해 보면
사이비 이단인지 아닌지, 또는 믿음의 형제인지 아닌지
여럽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자기 부인 없는, 자아중심이면 
아직도 그는 성령의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자아중심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임하심은
한 마디로 불가능이기 때문. 

교회 나간다고 다 내 형제가 아니다.

구원파처럼 스스로 구원받음을 강조해도 아니다. 
위의 지적대로 자기 부인이 되어 있느냐 아니면 자아중심이냐
그 언행심사를 잠깐 다루어보면 즉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 하신 그대로다. 


적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나오는 방법은ㅡ

적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나오는 방법은ㅡ




무저갱에 있던 사탄의 씨(네피림의 혼백, NSO)가
여자 태 속에 들어가면 적 그리스도 출생이다.
처녀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처녀 출생이고
박씨 가문 여자(며느리)의 태에 들어가면 박씨 후손.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몸에서 나셨으므로
이를 모방하는 행위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지만
적 그리스도가 나올 때 그런 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1960년대 초에 이스라엘 지방(필자의 판단)
("중동 어느 지역"이라고만 당시 토막 기사로 나온 적이 있음)에
유대인의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그 지역 여인들이 매우 흥분해 있었던 적이 있다.
그가 적그리스도라면 지금쯤 나이가 산출된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고 참고 정도로ㅡ.

이렇게 네피림에 한해서 소위 환생, 전생 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전체 인간이 다 그러한 것처럼 악령들은 기만하고 있는 것.
필자가 아는 지인 중에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하고 약속을 했단다. 일정 기간 관계를 하지 않기로.
그런데 어느날 태기가 왔고 너무 심각해 
병원에 가 낙태를 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잠결에 관계를 하여 잉태하기까지 하는 수도 있는가ㅡ
본인은 절대로 없다고 장담을 한다.
남편되는 이도 물론이다.

어떻게 혼백이 여자의 태 속에 들어가 인간으로 형성되는지
우리의 지식 한계 밖인 초능력으로 초자연계 존재들의 일이니까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 할 것도 없다.
자연계와는 전연 상이할 뿐 아니라
더구나 불법으로 이루어지는(하나님이 정하신 바가 아닌)
결과물이므로 그러하다.

단 인간의 육체적 형질은 우리 주님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여자 편에서 나오는 것이지 남자와는 무관하고
남성으로부터는 그 인생의 영혼과 관계되는 
본적인 것이 작용하는 듯.

그래서 여성의 육체적 요소와 결합하여 
한 인간으로 탄생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씨(혈통)는 남성으로부터 나는 것이지
여성 쪽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계보는 친생자 계통과 양자 계통이 겹쳐져 있다.
"낳고, 낳고" 하는 부분이 전자이고
"그 위는, 그 위는" 하고 나가는 것이 양자 계통이다.
그래서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시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됨을 감안한다면
대칭 아담께서 이러한 양자 계통을 통해 
다윗의 혈통이시라 함은 당연하다.

4복음서에 보면 주님께서 "군대"라는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무저갱에는 보내시지 말기를" 간청하는 것을 보면
무저갱은 이러한 영물들을 
마지막 심판 때까지 당분간 구류해 두는 곳.
그래서 네피림으로서 적 그리스도 전생은 
한 때 이 지상에서 일시 지체한 후
사망해서는 그 아비를 대신해 무저갱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창조주 하나님의 불가결성도, 우리의 고난의 불가피성도 대칭 원리로 확증, 확인돼

창조주 하나님의 불가결성도, 우리의 고난의 불가피성도 대칭 원리로 확증, 확인돼












용(龍, 사탄).
그는 에덴낙원에서의 살인죄(아담 부부 관련)로
저주 받아 직립보행에서 자연계 뱀처럼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음으로써 불가항력적으로 인간의 눈에 띄이는 
유일한 영물이 되어
오늘날까지 용(dragon)으로서 
동서양을 통해 널리 알려진 존재. 
그의 저주 받은 고통은 모르기는 하지만
인간(여성)의 산고(産苦)와 맞먹을 듯. 

오늘날의 그의 거대한 몸통은 
그렇게 인간의 눈에 가급적 띄이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해 질수해야 하는 부작용으로
생긴 결과물일 수도 있다고 판단됨.
애초 그는 네피림을 만든 첫 장본일 수도.
그렇게 저주는 받았으나 자연계 인간(남성)으로
자신을 변환시키기에는 아무 장애가 없었던 듯.

그래서 낳은 자식이 곧 등장할 적 그리스도(계 3:15).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계 17:8).
네피림을 생산한 다른 악령들은 
그 대가로 무저갱에 들어갔으나(유 1:6,7)
사탄만은 그 특수 역할로 인해 유보되고
그 대신 그의 소생이 무저갱에 그동안 있다가
이번에 나오게 되는데
이 악한 자가 결국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되면(계 19:20)
사탄은 그 유보되었던 무저갱 신세를 온전히 채우게 됨. 






나 자신, 나의 모든 소유와 결별함으로 인한 크나큰 엄청난 축복을 너무 몰라ㅡ

나 자신, 나의 모든 소유와 결별함으로 인한 크나큰 엄청난 축복을 너무 몰라ㅡ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마른 땅의 생명의 단 비 같은 진리인데도
구름 같이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갑은 을을 위해, 을은 갑 위해 사는 천국에서는 그 나라 헌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그 말씀을
당시 제자들은 너무나 듣기 싫어
그간 목도한 놀라운 기적은 헌신짝 같이 던져 버리고
그렇게 미련 없이 주님 곁을 떠난 것입니다.
자아중심의 이 세상에서는 너무나 걸맞지 않는 생활 윤리였기에
다시 말해 세상 사랑, 세상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영생의 기회도 던져 버리고 주저 없이 떠난 것입니다.
이런 자살 행위는 당시의 제자들만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현실의 우리 자화상입니다.

남자만 5천, 4천 하던 그 많은 인파는 어디로 가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소유자는
바울 사도의 증언에 따르면 고작 500여 정도.
그들은 이 세상 어떠하든 즉 죽음이든 삶이든
고통이든 아니든 진리인 줄로 확신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그 부활하신 몸을
나타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청년 부자가 주님께 와서 영생의 길을 여쭈었을 때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의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느냐 하시니
모두 지켰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청년을 "사랑하시어" "네게 한 가지 부족함이 있다"
하시고 "모든 소유와 결별하라" 하시니
(시험해보고자 하심이 아니라
내 것은 모두의 것, 모두의 것이 내 것이기 때문ㅡ
이것이 만유를 상속하여 내 것으로 삼는
생명의 영원한 법칙이기 때문에 이를 가르치신 것이니,
내 것이라 고집하는 한 모두의 것을 내 소유로 할 수 없어,
주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도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어)
생명의 진리 즉 만유를 소유하는 부자되는 비법을 알려 주심에도
이 세상에 대한 한도 없이 미련스러운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맥없이 떠나간 것입니다.

강조하여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하시니
모든 제자가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구원 얻겠는가 하고
놀라 마지않았으니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듣자니
견딜 수 없어 솔직히 까놓고 여쭙기를
"구원 얻는 자가 적습니까?" 혹자가 질문하니,
바로 그 "좁은 문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말씀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은 최대 이유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달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호령하는 영광의 메시아를 원했는데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형수로서 당신을 형상화하시니
곧바로 걸려 넘어진 것으로서 오늘날도 이렇게 걸려 넘어지는 이
슬프지만 너무나 많습니다. 현저히 도처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사이비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않는 한, 성경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한
정통 보수의 기독교 진리가 나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 처럼 모든 일에 완벽해도
주님께서 친히 그를 사랑하실 정도였지만(막 10:21)
자기의 고집대로 하여 말씀에 응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을 읽어 친히 가르치심을 받기에 부지런하라는 것입니다.
자아중심을 따르는 인위적인 교리를
무분별하게 의존하여 자살 들쥐(lemming)처럼
대중심리에 도취되어(절대 다수니까) 따라가다가는 필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