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4일 일요일

우주 구석구석이 샅샅이 쓸어 찾아보아도 "우연 발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fashomo"의 발음은 나라마다 다 틀려
파쇼모에 가까운 발음은 이태리어, 폴란드어 정도. 라틴어도 맞지 않음
"fas homo"로 해도, "파스 호모"라는 동일한 발음을 얻기 어려워.
"trinihomo, trini homo"는 비교적 양호한 편.
trini는 영어 trinity의 라틴어 원말인 trinitas의 어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다. 우리가 주님의 두려우심을 알므로"(고후 5:9-1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이 선을 행하라고 하심이다. 죽은 자였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함이다. 선과 의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순종하지 않았으므로) 그 대가로써 아담은 죽었고 영물들 중의 악령들은 멸망의 운명을 자초한 것이다. 우리도 아담의 창조처럼 창조되었으니(새 창조로) 당연히 영생이다. 영생하는 자 즉 이성적인 영원히 사는 존재로서 선과 의를 행함은 필수이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할 바에야 영원히 존재한들 무슨 의미인가. 그런 존재들이야 불 못에 부지기수로 있지 않을 것인가. 새 창조를 받지 않고 다시 출생한 것이 아니라면 특수 사정에 의해 범죄해도 어느 정도 용납된다 할지 어떨지 모르나 엄정하게 우리는 새로 창조된 것이다. 

이는 범죄 전의 아담처럼 또는 (일부가) 범죄하기 전의 영물들처럼 선을 행하게 되어 있는 즉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악령이나 죄인 인간을 만드시지 않은 것이다. 고로 우리도 당연히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새로) 창조되었고 선을 행하게 되어 있고(둘이 하나됨의 머리와 몸 관계의 이치를 따르는 생명의 법칙을 지킴으로써) 그렇지 못하면 옛 시절 아담처럼 또는 악령들처럼 범죄로 멸망하게(아담은 죽음으로써 즉 자연계 몸으로써 일단락됐으나 우리는 이미 죽음의 단계를 거쳐 새로 창조되었으므로 영물들처럼 영원 멸망에 해당될 뿐 두 번 다시 죽음은 없다) 되어 있는 것이야 당연사리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선과 악"을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다(롬 2:7-10).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안믿었느냐 하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는 하나 믿어도 순종하지 않고 처음에는 믿었다가도 나중에 얼마 뒤 범죄하는 수가 허다하니(마 7:21) 결국은 믿음의 열매인 선을 행했느냐 아니면 자아중심이 되어 악을 행했느냐로 영원 운명이 가름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믿지 않는 자는 그 믿지 않았다는 것에다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즉 생명의 법칙을 따라 살 수 있는 기회 곧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하나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이를 스스로 거부한 것이므로,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한" 동일 범주에 속해 심판 받는 것이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이 심판 때 그리스도를 믿는지 여부로써 심판 받는 줄 착각하고 있다. 이는 성경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인지가 둔해서 성경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지 않을 때 즉각적으로 사탄이 개입하게 되어 있으므로 사탄의 농락 때문이다. 그런 농락을 당해도 회개 않고 여전히 자아중심으로 나간 결과로 하나님도 당연히 그를 버리신 상태다. 물론 회개하면 되는 것인데 이 회개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중보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될 수 있는 것이니 우리의 기도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약속하셨어도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함을 에스겔서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데 우리 역시 하나님을 위하는 즉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동시성, 양면성의 이치를 따름이다. 일방적으로 되어지는 일은 없다. 이것이 생명의 법과 질서다. 법과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니 조화와 통일을 토대로 한 한 몸됨의 행복의 평등과 평균됨을 영원토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이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요 5:24) 하신 말씀을 수록한 요한 사도는 마치 그 말씀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도 하는 듯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한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요일 3:14)고 한 것이다. 이는 "믿음"의 열매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형제 사랑은 당연히 포함된다고 하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속성을 말함이니 "사랑으로써 역사되는 믿음"(갈 5:6)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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