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남녀노소 그리스도의 군인된 사람들이 부르는 양양가(洋洋歌)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니"(딤후 2:3)

인생의 목숨은 초로(草露)(註1)와 같고(註2)
부활의 영광은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그대(註3)가 산다면
아아 이슬 같이(註4) 죽겠노라

(註1) "조로"(朝露), 아침 이슬이라 해도 좋음('초로'는 풀 잎의 이슬)
(註2) 자연계 육체의 생명
(註3)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림이 마땅하다"(요일 3:16) 한 대로 
"새 계명"이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라 하셨으므로 
요한은 이를 정확하게 풀이한 것.
(註4) "주님처럼(주님 따라) 죽겠노라"도 무방함.
        앞에서 "이슬" 같은 목숨이라 했으므로 거기 맞추어도 됨.


바울은 "나의 골육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되지 못하고 망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못하시면 
차라리 제 이름도 주님의 책에서 말소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랑 즉 자아중심이 아닌 자기 부인을 가리켜
거룩함(聖)이라 하는 것. 성인, 성녀가 따로 있지 않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성인(saint)"들이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랑은 내면적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노틀담의 꼽추처럼 흉물, 추물로 생겼어도 
이 사랑이 있는 심성이라면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 한다. 
내가 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대칭 아담께서 이와 같이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 나를 사랑하여 위하시니 
그래서 자신을 송두리째 내게 선물로 주심으로(갈 2:20) 
내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만유의 상속자가 되어(대칭 아담과 함께) 
주인이 되어 있으니 나 자신을 위할 티끌만큼의 욕심을 낼 
공간이 도무지 없어 자연스럽게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은혜 때문이다.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 한 그대로
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자기 부인도 없고 
자아중심으로 욕심만으로 일그러진 심성이라면 
그가 아무리 입으로는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도 
자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단정이니 
왜냐 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는 자이고 
악(자아중심ㅡ"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한 대로)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뵌 적이 없다"(요삼 1:11)는 확증이기 때문이다.   
"
군인들이 이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것을 보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생각에 미치어서는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벧전 3:1). 
입으로만 믿는다 하고 이와 같은 선행이 없는 이른바 "구원 확신자"는 
많은 사람의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원흉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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