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4일 일요일

핵심을 파악해야








창조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친히 사람되시고 십자가 죽음의 고통과 수치를 당하시지 않고도 얼마든지 인간을 살리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은 죽어야 하고 인간의 죄 값으로서의 죽음의 고통을 치르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이 절대 불가능하기에 이 원리원칙, 생명의 법대로 따르신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인간이 절대로 지어낼 수 없다. 이 자체가 벌써 성경이 한 점의 거짓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또한 자체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고는 인간의 상상으로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내용임을 다시 강조한다.

아드님께서도 기도하시기를, "아버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막 14:36) 하신 것이다. 즉 아드님 친히 우리 위한 이러한 사형수로서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지 않고도 인간 구원은 가능하시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셨다. 아드님 홀로 당하신 고통이 아니시다. '둘이 하나됨'의 이치를 따라 아드님과 하나되신 아버님 역시 똑같은 고통, 아니 아드님을 생각하시는 고통까지도 더 보태어 덤으로 얹어 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 외에는 원리원칙을 지키고 공평공정을 기하는 길이 달리 없음을 판단하시고 결행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 감읍(感泣)할 뿐이다. 이러한데 어찌 성경에 거짓이 있고 사람이 지어낸 것이 있다기에 그 핑게를 대고 성경을 괄세하고 백안시하는가.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한다"(잠 19:24)고 한 그대로다. "게으르다" ㅡ'자아중심'의 한 가지 묘사다. 자기를 위하는 일변도의 생각으로만 도취되어 있는 탓에, 머리를 굴려 이지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도무지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롬 12:9). 이 한 마디만으로도 족하다. 백 가지 의혹을 덮고도 남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확증된 바다(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전한다고 하는 사도들이 거짓말을 하겠는가. 거짓말은 강제, 간섭이다. 

강제할 때에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몬 1:8,9).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한 것이라도 그것을 권력으로 강제할 때에는 사랑이 아니다. 구원의 말씀은 사랑 빼놓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깔벵이 비록 잠시라도 극소 지역에 한해서이지만 국가 권력을 휘둘렀을 때 그는 진리 편에 서 있지 않았음을 알아야 하는 것. 유독 그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든 것이 그러하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도 일정 규범은 지키도록 해야 하나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서는 부모가 먼저 사랑으로 본을 보이지 않는 한 그 자녀들을 영생에 이르게 하는 데에는 완전히 역부족임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어떤 일로 체벌할 때 추운 겨울 침구를 들고 밖에 나가 자도록 했다. 벌써 그렇게 하겠다고 경고를 주었건만 아들이 아버지를 우습게 본 것이다. 아들이 바깥에서 이불을 두르고 떨고 있을 때 아버지도 자기 침구를 들고 아들 옆에 누웠다. 둘은 밤 새도록 한 잠도 자지 못했다. 그 후 아들은 두 번 다시 아버지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나를 위해 죽으심이 바로 그런 이치와 같다. 이야기의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아무나 결행하지 못한다. 사랑만은 할 수 있다. 아무나 못하는 일을 기록해 놓았을 때에는 진정 생각 있는 사람일진대 이런 성경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못하는 법이다. 방금 지적한 바와 같이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하여 하나님 앞 제사장의 기도로써 악령들의 세력과 직접 부닥쳐 싸우지 않는 한 그 어떤 결과도 기대난망이다. 

거짓은 자아중심의 열매다. 사랑은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둘이 하나됨에서 오는 것이요 유지되는 것이니 이러한 자기 부인의 바탕에서 상대만을 위하는데 어찌 상대를 감아 넘기려는 거짓말이 있을 수 있는가. 성경에 대한 관점을 새로 다시 정리해야 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ㅡ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도 상대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이야기를 꾸며댈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왜냐면 인간이 지어냈건 어찌 했건 하나님이라면 절대 지존의 경배의 대상으로서 그 종교의 중심인데, 사람으로서 그렇게 벌거벗은 채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으로는 절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런 하나님을 절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으로 삼을까 하는 걱정부터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치욕의 죽음이 아니라도, 죽음 자체에만 의미를 둘진대 얼마든지 그럴싸한 죽음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고로 그런 하나님으로는 천하 없는 거짓말쟁이라도 만들어놓을 수가 없다는 이 한 마디로써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모로든 가감 없는 진실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 성경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이런 진실 그대로의 묘사로 차마 그려내지 못하겠거든 그런 그림 그리는 일 자체를 아예 버릴 일이다. 거짓이 좋은 결과를 내는 법이 없다. 그런 거짓된 속이는 그림을 인하여 방금 말한 크나큰 진실을 본의 아니게 감추어 오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어버이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로 하실 수 없는 형언도 못할 크나큰 진실 하나를 많은 대중으로부터 감추어 오지 않았는가! 그런 거짓은 사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탄에게 농락당해 온 것이다. 그래도 그려야겠거든 그 십자가 뒷모습만 그려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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