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절망적인 주님의 엄중하신 경고 말씀"




그러나 이 세상 사는 재미가
영원 무궁한 고통, 고난보다 더 나은가?
영원한 생명의 환락보다 더 나은가?
그래서 처음부터 전도서(9:3)에 
단단히 "미쳤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는 훤하게 다 안다.
다만 세상 사랑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절망적인 경고를 하신 것이다.
사탄의 시험의 3요소로서 기본적인 "생명의 법칙 무시하라"는 충동질 외에
세상 사랑이라는 항목이 당당히 끼어 있음을 왜 인식 못하는가(눅 4:7).

이 세상 사랑은 그 옛적 에덴낙원의 선악과 나무 그 행색 그대로다.
여자가 감쪽같이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까지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이 거침돌에 영락없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사탄이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현란한 것인지
아담 외에는 아직 맛본 인간이 없기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존재로서 이것이 짐승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
이 이성적 판단은 세상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감성적 충동에 앞서야 당연하다.

생각해보라, 지금 이 세상은 진리를 알지 못해 멸망 직전에 놓인 이들로 꽉 차 있는데
진정 이 사실을 안다면,
자기 자신 역시 어떻게 되어 이 구원의 길을 알았는지 안다면,
감히 이런 사람들 내 버려두고 무슨 일인들 손에 잡히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당장 사람들을 건져내야 한다는.
비록 세상 사랑이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이라 가정하더라도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동류 인간의 처지를 안다면
그런 것 죄 반려하고 사람 어부(漁夫) 일에 뛰어들 판국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도 말씀이시지만, 상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믿음이 전연 없어 구원된 적이 없거나
아니면 있어도 빈사지경에 있어 바람 앞 촛불처럼 되어 있다고 단정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 살리는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몸바쳐 일신을 던져 수고하는 터라면
세상 삶, 세상 사랑 감히
어디서 한 구석엔들 마음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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