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4일 일요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구원을 받고 보니까 세상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세상의 실상과 함께 나 자신의 실태를 알고 나니 그리스도를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병든 자가 의원(醫員)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그런 사람들이 "내게 온다" 하신 말씀의 뜻이다.

주님께서 세상 사랑에 대해 경고하신 것은
<중도에 마음을 변할 수 있는 것>을 경계하심이다.
세상에 대하여 이제 비로소 깨닫고
세상 사랑을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신 것.
그러므로 이런 세상의 실상을 자각함이 없이
그리스도께 나왔다고 판단되는 이는 정작 그리스도께 나온 것이 아니므로
모름지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회개는 그냥 양심상으로 깨닫고 죄인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자각은
반드시 죽음의 멸망을 의식함을 수반하기 때문.
따라서 그렇게 세상의 실상을 알고서 그리스도께 나오고는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
오직 중도에 마음이 변하여 자아중심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는 표현도 이 중도 배신을 말하는 것.
고로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다는데 있으니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 2:4) 하심도 이 때문.
때문에 내가 지금 구원을 받아 있는 줄을 알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세상을 사람함이 되어 나의 구원을 잃는 결과나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랑하지 않음은 방금 설명대로 구원받은 터전 위에서 가능한 일.
구원받은 기쁨,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되어 있는 자부심을
기반으로 하는 자기 부인이니까.
그 든든하고 넉넉하고 느긋하고 푸짐한 내적 충실이 없이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그 어느 것도 수행 자체가 불가능한 것.

만에 일이라도 불안하면 그 불안을 해소할 일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 친히 더 원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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